[펌] : 다음 카페 : 광고쟁이 Season2
1618. 제로섬게임의 전략 - 어떤 장인의 고민


A는 칼을 만드는 장인이다. 그는 최고의 칼을 만든다. 그러나 그는 칼집을 만들지는 않는다. 칼집은 이웃마을에서 만든다. 그는 칼집을 만든 사람에게 자신의 칼을 팔고, 칼집을 만든 사람이 칼을 칼집에 넣어서 판다. 그가 만든 칼을 칼집에 넣어서 팔면 하나에 2만원을 받는다. 칼이 1만원, 칼집이 1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법에 따라 칼집이 없이는 칼을 팔 수 없다.


내일이면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시장이 열린다. 그래서 A는 자신이 만든 칼을 팔러 이웃 마을에 갔다. A가 만든 칼은 모두 10개다. 이웃 마을에서는 10명의 사람들이 각자 칼집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칼집을 만든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담합을 한 것이다. 그들은 A의 칼을 싸게 사려고 마음먹고, 담합하여 칼의 가격을 모두 1천원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면 시장이 열린다. 하나에 1천원이라도 주고 파는 것이, 하나도 못 팔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 안 그러냐?”


A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시장은 1년에 한번 밖에 열리지 않는다. 지금 칼을 팔지 못하면 A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만약, 당신이 A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당신은 1만원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칼이 10개 있는데, 상대는 서로 담합하여 1천원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기분에 충실하여 “열 받네. 칼 안 팔아!”라고 한다면, 당신의 소득은 0원이다. 성질을 죽이고 1천원에라도 판다면, 당신은 10만원의 값어치가 있는 칼을 1만원에 팔게 된다. 그렇게 하면, 1만원이라도 건질 수는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당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성질을 죽이고, 1만원짜리 칼을 1천원에라도 팔겠나? 아니면, 열 받아서 장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가져간 칼을 그냥 가져오겠나? 혹시, 진짜 열 받아서, 담합한 녀석들에게 칼을 휘두르지는 않겠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이야기 1의 상황을 게임으로 파악해보자.


칼집을 만드는 이웃마을 사람들이 A가 만든 칼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사려고하는 것은 A에게 손해를 입히고, A의 손해만큼을 자신들이 이익으로 얻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A에게 제로섬게임(zero sum game)을 걸어오는 것이다.


A와 이웃 마을 사람들은 서로 힘을 합하여 더 좋은 칼과 칼집을 더 많이 만드는 협력을 통한 넌제로섬게임(non-zero sum game)을 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A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이 선택한 상황이다. 그들은 담합을 해서, A에게 손해를 입히고, A가 손해 본 만큼을 자신들이 이익으로 얻으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의 이야기를 통하여 A가 가져야 할 전략을 생각해보자.


중국과의 인삼 무역을 통하여 조선 시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던 임상옥도 실제로 이야기 1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그가 아직 조선의 부자 대열에 끼기 전이었던 시절에 임상옥은 홍삼을 들고 중국으로 팔러 갔다. 당시에는 무역이 지금과 같이 원활하지 않아서 홍삼을 중국에 팔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단 한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국 상인들이 담합하여 상질의 조선 홍삼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야기 1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 최고의 부자였던 임상옥을 다루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이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때의 상황이 임상옥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었고, 그 상황을 극복한 것이 그의 일생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럼, 임상옥은 담합하여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중국 상인들을 상대로 어떻게 맞섰을까?


임상옥은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이 가져온 홍삼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 비싼 홍삼을 거리에서 불태우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두 모여들었다. 그의 행동은 미친 짓처럼 보였다. 값비싼 홍삼을 거리에서 불태우다니. 그 때, 중국의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급히 불을 끄는 것이었다. 그들은 불타지 않고, 남은 홍삼을 정상 가격보다 비싸게라도 살 테니 제발 홍삼을 불태우지 말라고 사정했다. 왜 그랬을까?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다. 임상옥은 홍삼을 팔아야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중국 상인들도 홍삼을 사야 했다는 점이다.


임상옥이 홍삼을 팔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단 한번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중국 상인들이 홍삼을 살 수 있는 기회 역시 1년에 단 한번 뿐이었던 것이다. 홍삼을 못 팔면, 임상옥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상인들 자신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 임상옥의 홍삼이 불타는 것은 막았던 것이다.


이제 이야기 1의 상황에 임상옥에게 얻은 지혜를 적용해보자. A가 취할 행동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칼집을 만든 사람들은 A를 상대로 제로섬게임(zero sum game)의 상황을 만들었다. 상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A에게 손해를 입히려 하고, A의 손해는 바로 상대의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A는 자신의 이득보다는 상대의 손해를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상대의 손해가 바로 나의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A는 이렇게 하면 된다. A는 칼집을 만든 사람들 10명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의 칼 하나를 부러뜨린다. 칼이 10개에서 9개로 줄었으므로, 칼집을 만든 10명의 사람 중 한명의 칼집은 팔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10명의 담합은 깨지고 자신이 갖고 있는 칼집이 팔 수 없는 물건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먼저 칼을 사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칼의 가격은 처음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제로섬게임에서는 상대의 이익이 나의 손해가 되고, 상대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 된다. 당신이 만약, 제로섬게임의 상황에 있다면, 당신은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의 손해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제로섬 게임의 일반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지지 않는 것’이다. 이기기 위한 전략보다는 지지 않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지지 않으면 내가 이기게 되는 것이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손실을 키우는 것이 주요한 전략이 된다. 나의 이익보다는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는 방법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그것이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미니맥스(min max, 상대의 최대 값을 최소화한다) 전략인 것이다.


이야기 1과 같은 상황을 생각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가끔 제로섬게임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가 제로섬게임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마, 제로섬게임을 넌제로섬게임으로 바꾸는 것일 게다. 우리는 제로섬게임보다는 넌제로섬게임을 해야 한다. 서로 협력하여 더 큰 파이를 만드는 게임을 통해서 더 큰 이익을 얻는 게임 말이다. 그래야 실제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 박종하, 창의력 에세이, 2003.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