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탕화면의 아이콘 배치를 저장하는 툴을 받았다.
사용한 예제를 보니 내 머리속엔 몬드리안의 작품이 딱 떠올랐다~
근데... 이 머리가 그걸 과연 기억할 수 있었을까? ㅋㅋ
문득 떠오른것은 최강희가 나왔던 영화에서 나왔다는것!
그런데 영화 이름이 생각나질 않공...
ㅋㅋ 그래서 검색을 최강희 -> 달콤, 살벌한 연인 -> 몬드리안 순으로 겨우 찾아냈다.

그런데, 몬드리안 작품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허걱~
아무튼, 그중에 홍태가 찾아준 바탕화면으로 쓰기 좋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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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바탕화면 아이콘 배치 저장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쓰면 좋을 듯~

http://hackereyes.hufs.ac.kr/blog/160







* 몬드리안의 다른 작품들

출처 블로그 > 푸른 서재
원본 http://blog.naver.com/bluehour64/10001467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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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with Yellow, Blue, Black, Red and Grey,1921>
 
칸딘스키와 더불어 유럽 추상회화의 진운을 개척한 또 다른 화가로는 피트 몬트리안이 있다. 칸딘스키가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눈을 돌려 추상회화를 개척했다면, 몬드리안은 외부 세계를 그리되 그것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자연의 형태를 벗어남으로써 순수 구성의 추상회화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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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blanc, rouge et jaune:A , (Composition-White,Red and Yeelow:A) 1936>
 
몬드리안이 어떻게 수평선과 수직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흑백의 무채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하게 표현된, 그의 '나무'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가 갈수록 단순화되면서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점점 선처럼 변해버리고 가지 사이의 공간은 평면으로 전환된다. 마침내 그 나무는 오로지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그것이 교차하면서 생긴 사각형만 남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구성을 반복해 그리면서 그는 결국 모든 주제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사물의 근원은 오직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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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with Double Line (unfinished) 1934>
 
"자연은 그렇게 활기차게 끊임없이 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몬드리안의 이런 생각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더욱 뚜렷해진다. 나무를 그려도, 도자기나 건물을 그려도, 그 어떤 것을 그려도 단순화하다 보면 그것들의 최종적인 모습은 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든 면들로 귀결돼버렸던 것이다. 세계를 이렇게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몬드리안만이 전매 특허는 아니다. 옛 사람들은 일찍이 하늘을 점으로, 땅을 수평선으로, 사람을 수직선으로 간단하게 표현했다. 사물의 겉모습을 계속 단순하게 생략해가다 보면 결국 남은 것은 수직선과 수평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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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A, with Double Line and Yellow, 1935>
 
수평선은 우리에게 바탕과 휴식의 느낌을 준다. 대지와 바다는 수평선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바탕이다. 어떤 것이 자리할 토대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이 살아가려면 땅이나 바다 같은 수평의 공간이 필요하다. 수직선을 서 있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사람이나 나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서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요,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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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No.I) gris-rouge, (Composition (No.I) with Gery and Red) 1935>
 

사람들은 "뜻을 세운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뜻을 세운다는 말은 의지를 갖는다는 말인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의 의지를 올곧게 세우는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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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with Blue and Yellow, 1932>
 
온갖 활동의 바탕이 돼주는 수평선과 삶의 의지를 담은 수직선이 만나면 존재의 좌표가 된다. 몬드리안은 평생 수평선과 수직선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므로 그의 단순한 그림은 바로 우리의 실존적 좌표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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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물론 가장 단순한 조형요소만으로 근원을 형상화한다 하더라도 몬드리안의 그림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간단한 수평선과 수직선, 몇 가지 색채가 전부이지만, 그의 그림은 끝없이 변모한다. 이는 근원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정지나 종말이 아니라, 정연하고도 조화로운 운동과 전개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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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No.III, with Red, Yellow and Blue, 1927>


몬드리안이 벗어나고자 한 것은 무질서였다. 근원과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변하는 것은 무질서일 뿐이다. 세계는 이 무질서로 충만하다. 그는 무질서에세 인간을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돌아가고자 한 질서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듯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근원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이처럼 미술이 지닌 초자연적인 힘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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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ion: No.I, with Black, Yellow and Blue, 1927>
 
"미술은 초인적인 것이어서 인간이 가진 초인적인 요소를 개발해냄으로써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몬드리안 역시 자기 파멸의 공포로 흔들리던 20세기 초의 유럽에 추상회화를 통해 우주 신비를 새롭게 확인시켜주며 영속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이야기하려 한 예술가였다.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2> 중
 


그의 작품엔 유쾌한 절제가 들어있다.

정제된 색과 선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맑게 한다.

선과 선을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만나는 색면의 징검다리들.

선명한 사고를 만들어내더니 복잡한 상념 쪼가리들을 훌훌 털게 한다.

그래서, 군더더기없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오늘,

투명한 얼음속에 들어있는 사각형의 단정한 색들을 본다.

게으른 시선을 압도하는...

색과 형의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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